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그 사이 이화루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그 사이 이화루애
  • 더카라반
  • 승인 2016.05.0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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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그 사이 이화루애

TOUR / STAY HERE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그 사이 이화루애

 

"밥 먹어~ 정환아! 밥 먹어!"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 엄마는 골목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크게 소리쳤다. 한 손으로는 대문을 꼭 잡고, 두 눈은 골목 어딘가에 숨어 있을 아들을 찾았다. 그 목소리에, 골목 여기저기서 두더지 판 속의 두더지처럼 아이들이 튀어나온다. 그 길을 소주 몇 병이 든 봉지를 덜레덜레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아버지. 80년대 우리 동네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이다. 그런 저녁 시간을 추억하게 하는 풍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르막길이기도 하고, 내리막길이기도 한 그 어느 순간의 골목에 이화루애가 있다.

 

 

# 보물찾기

이화루애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의 이화동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이화동은 배 밭 가운데 있어 봄이면 배꽃으로 둘러싸여 이화정(梨花亭)이라 불린 정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사진가들의 셔터를, 손을 맞잡은 커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지금의 이화동은 2006년 ‘낙산 프로젝트'를 통하여 ‘벽화 마을’로 탈바꿈하면서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화동으로 가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혜화동 대학로에서 이화 마을을 향해 낙산 공원까지 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이 길은 이화동을 수놓은 벽화 중 유명한 벽화를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코스이기 때문이다. 오르막길이 하늘을 향하듯 가파르고, 좁은 골목들은 마치 미로처럼 얽혀있는 이화동.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또 다른 벽화가 나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렸을 때 자주하던 보물찾기가 떠오른다. 마음에 드는 벽화 앞에서는 셔터를 눌러보며 골목 곳곳을 누비다 보면 어느 덧 이화동 언덕 위에 올라있다.

“오, 찾았다!”

빛이 바랜 건물에 배꽃이 그려진 ‘이화루애’ 간판이 보인다. 드디어 나타난 이화동의 진정한 보물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 어제와 오늘의 Collaboration

이화루애는 창조적 감성으로 지역성과 개인의 열망을 공간에 풀어내는 디자인 그룹, Z_Lab의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다. Z_Lab은 기획부터 설계, 시공, 디자인,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통합적 디자인을 추구하는데, 특히 지역이 지닌 장소성과 개인의 생각이 만나 일으키는 시너지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기존 건물을 부수고 꼭 새롭게 지어야만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950년대에 정부는 이화동 부근에 대규모 주택 단지를 조성했고 그 결과 이화동은 부촌으로 탈바꿈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변하자 다시 허름한 판자촌으로 바뀌었다. Z_Lab은 공간을 의미 있고 새롭게 재창조하고자 원형을 살리면서 주변 지형과 어울리는 공간으로 이화루애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화루애를 최대한 원형 그대로 살려내면서도 이화동과 어우러지게 설계하였다. 다시 숨 쉬게 된 이곳은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어, 신축 건물에서는 느끼기 힘든 색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빛바랜 벽이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지붕의 틀은 이런 느낌을 배가시킨다.

 

 

 

 

 

 

 


# 하늘의 중턱, Pastel music Open kitchen Private stay !

 

 

 

이화루애 건물 1층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인 Pastel Music이 있고,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적인 공간인 오픈 형 키친이 자리한다. 2층으로 올라가면 퀸 사이즈 침대 2개와 작은 조리대, TV와 소파가 놓인 침실이 있다.

'Pastel Music'은 언덕길에서 지친 몸을 음악으로 정화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음악레이블 파스텔 뮤직과 협업하여 만든 장소로, 누구나 올 수 있는 휴식공간이다. 파스텔 뮤직의 아티스트 노래도 감상할 수 있다. 요즘에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만 볼 수 있다는 LP판도 구비되어 있다. LP의 음악과 투명한 창을 통해 보이는 이화동 골목은 하나의 풍경이 된다. 지나가는 관광객의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곳. 폭신한 소파에 기대거나, 헤드폰으로 준비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건물 안쪽의 1층에 위치한 'Open Kitchen'은 식사를 하거나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소규모 공간이다. 다양한 주방용품과 집기들이 준비되어 있고, 중앙에는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긴 원목 테이블이 있다. ㄷ자형의 조리대가 있는 오픈 키친은 서너 명이 요리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수납공간은 오래된 원목으로 마감되어 있어 따뜻한 느낌이다. 오픈 키친의 벽면은 판잣집 시절 벽지 대신 발라졌던 빛바랜 신문과 벽돌의 모양을 그대로 살리고 페인트로 덧칠하였다. 빈티지한 커피포트와 토스트기, 와인 잔 뒤로 색 바랜 광고 문구가 보인다. 이렇듯 이화루애는 과거와 현재가 아름답게 융화되어 더욱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공간에서라면 나이와 성별은 아무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마음과 마음으로 우정의 술잔을 부딪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파티를 즐기자.

 

 

 

 

 

 

 

오픈 키친에서 나와 왼쪽으로는 2층의 ‘Private Stay'로 올라가는 출입문이 있다. 좁다란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중앙의 소파를 중심으로 널찍한 침대 2개가 놓인 공간을 만날 수 있다. 하나였던 공간은 슬라이딩 도어로 순식간에 두 개의 사적인 공간으로 나뉘기도 한다. 베란다 한켠의 비밀스러운 노천 욕조 역시 이 곳의 매력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쉴 수 있는 나만의 은밀한 공간이 이곳엔 하나 더 있는 셈이다.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조리대 위에는 캡슐 커피머신이 있어 진한 커피 향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이화동 골목과 발아래 놓인 듯한 이웃집 지붕이 마치 어릴 적 누구나 꿈꿔본 다락방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옛집의 틀을 그대로 살린 천장은 누군가에게는 추억이라는 아늑함으로, 누군가에게는 독특한 정취로 느껴지리라.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 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정인의 ‘오르막길’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화루애를 향하며 몇 번의 오르막길과 계단을 올랐다. 오르막길의 끝에서 돌아서 보면 내가 왔던 그 길은 내리막길이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중간 어디쯤에서 우리가 멈춘다면 오르막길로 다시 올라갈 것인지 내리막길로 다시 내려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늘 이런 선택의 기로에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 길의 중간쯤에서 잠시 멈춰보는 것은 어떨까. 이화루애, 이곳 하나쯤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그 사이에서 호흡을 가다듬는 공간으로 남겨두자. 

 

 

이화루애_2층_기고-(40)

 


writer + photographer 신지영, 여미현,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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