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에 머물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시우
느림에 머물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시우
  • 더카라반
  • 승인 2015.09.0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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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에 머물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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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에 머물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시우

 

 

도시의 속도는 빠르다. 차들은 도로를 내달리고 사람들은 정신없이 걷는다. 키 높은 건물들은 하늘을 가리고 거리의 벽면을 빼곡히 채운 간판들은 도시의 공간을 앗아간다.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바쁜 도시 중에서도 유난히 바쁘고 빠른 도시 중에서도 유별나게 빠른 도시가 아니던가. 삶의 시속이 빨라질수록 머묾의 의미는 퇴색된다. 그러나 앞만 보고 질주할 것 같은 도시에도 머무는 것에 가치를 잊지 않은 곳이 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서울의 시침을 잡아끄는 곳, 종로구 서촌에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 ‘시우’가 바로 그곳이다.

 

 

 

 

 

 

 

삶의 향기가 있는 도시의 오아시스

서촌은 옥인동, 효자동, 통인동 등 9개의 동을 포괄하는 마을이다. 경복궁 서쪽에 있다하여 서촌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 서울의 필수 관광지가 된 이웃 마을 북촌과 더불어 도심 속 한국의 전통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서촌과 북촌은 닮은 듯 다르다. 북촌의 한옥이 비교적 화려한 데 비해 서촌의 한옥은 보다 소박하고 정갈한 맛이 있다. 으리으리한 한옥들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것이 북촌의 풍경이라면 현대식 가옥과 도시형 한옥이 조화롭게 섞인 것이 서촌의 풍경이다. 하늘 높이 치솟는 유명세 탓에 북촌에는 상업적 냄새가 짙게 배어들었다. 그에 비하면 서촌에는 아직 삶의 향기가 우세하다. 자하문로 19길. 사람들로 북적이는 경복궁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한옥들 속에 시우가 있다. 기품이 느껴지는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한 폭의 동양화가 펼쳐진다.

 

 

 

 

 

 

 

뻥 뚫린 하늘을 품은 마당과 이를 감싸는 ‘ㄷ’자 형태의 구조의 건물, 낮은 기와지붕, 고풍스러운 창문 장식까지. 한옥의 단아함과 우아함에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마루에 가만히 앉아 풍경을 음미한다.

 

한자로 ‘시우루(時雨樓)’라고 쓰인 현판이 눈에 띈다. 시우(時雨). 때맞춰 내리는 비를 뜻한다. 오랜 가뭄을 뚫고 내리는 비만큼 반가운 것이 없듯, 여유에 목마른 도시에 이 작은 한옥은 오아시스처럼 달다.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간

시우는 본래 1961년 건축된 평범한 한옥이었으나 2006년 건축 전문가들의 손길에 새 옷을 입었다. 게스트하우스가 되기 전에는 ‘하루헌’이라는 이름으로 한 건축가의 개인 서재 겸 작업실로 사용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학자들과 건축 전문가들의 세미나가 열리는 사랑방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이었던 셈이다. 이곳이 모든 이들이 찾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된 것은 작년 7월. 시우의 주인장 역시 건축가로, 한국적인 공간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건축가들에 의해 지어지고 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곳답게 공간구성이 남다르다.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공간의 협소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부엌부터 시작되어 대청, 마루방까지 이어지는 공간은 특히나 놀랍다. 부엌과 대청 사이에 있는 접이식 문은 이 두 공간을 완벽하게 접합·분리한다. 대청과 마루방도 마찬가지다. 들문을 사용하여 공간의 활용도를 극대화했다. 평소에는 대청과 마루방이 여닫이문에 의해 분리되어 있지만, 공간을 넓게 써야할 때는 문을 회전축으로 들어 올려 걸쇠에 걸면 된다. 세 곳의 전혀 다른 공간이 하나의 공간이 되었다가 다시 분리되는데 막힘이 없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지혜로운 한옥의 매력이 느껴진다. 대청마루의 벽면에는 책꽂이를 만

들어 수납공간을 확보하고 보이지 않는 자투리 공간에 에어컨을 밀어 넣어 실용성은 유지하

되 미관은 헤치지 않았다. 집안 곳곳에서 어느 한 공간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느껴진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

시우의 객실은 총 4개로 마루방, 안방, 건넌방, 사랑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청과 부엌은 공용공간으로 사용된다. 객실은 각기 다른 매력을 지녔다. 마루방은 시원시원한 매력이 있다. 규모가 가장 큰 객실이기도 하지만 마당이 한눈에 보이는 커다란 창이 인상적이다. 안방은 단아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건넌방은 청렴하고 소박하다. 사랑방은 독립적인 매력이 있다.

 

한옥은 고즈넉하고 아름답지만, 현대인이 생활하기에는 다소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시우는 전통과 현대의 감성을 적절하게 융합했다. 외관과 건축형식은 한옥의 전통 기법을 따르되 편의성을 필요로 하는 공간에는 현대적 감각을 녹여냈다. 숙박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바로 욕실이다. 하루의 묵은 때를 씻어내는 공간이니 깨끗해야 하고 실용적이어야 한다. 시우의 욕실은 깔끔하고 모던하게 꾸며졌다. 건넌방과 사랑방에는 개인 욕실까지 구비되어 있으니 더욱더 편리하다.

 

과거와 현대의 조화는 부엌과 마루에서도 찾을 수 있다. 현대식 주방 구조를 띠고 있지만, 그릇이나 소품 등에서는 전통미가 느껴진다. 부엌에는 입식 식탁을 두고마루에는 좌식 테이블을 두었다. 동양인과 서양인 모두가 한옥을 즐김에 불편함이 없도록 고려한 마음이 느껴진다.

 

 

 

 

 

 

 

 

 

천천히, 깊게 음미하는 하루

시우에 머문 날에 비가 내렸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자연스럽게 잠에서 깼다. 빗소리 사이 어디선가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들렸다. 얼마 만에 듣는 자연의 소리였을까. 블라인드를 걷히니 빗방울을 한껏 머금은 커다란 소나무의 고고한 자태가 보였다. 처마를 타고 흐르는 빗물이 마당 바닥에 놓인 빗물받이통에 똑똑 떨어졌다. 마루에 앉아 나무를 보고, 새소리를 듣고, 풍경을 음미했다. 이렇게 여유를 느꼈던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분주하지 않은 아침이 낯설었다. 한옥에서는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른다. 천천히 그리고 고요하게 주변을 살펴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시우루-(15)

 

 

 

시우에는 번잡함이 없다. 젊음을 표방하는 다른 게스트하우스들처럼 거창한 이벤트나 특별한 서비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옥체험의 인기가 날로 높아져 가는 요즘이지만 시우는 사람들이 한옥이란 아름다운 공간 자체를 느끼는 것에 중점을 뒀다. 정성스레 차려준 아침밥상에서는 주인장의 묵묵하지만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바쁜 일상에 지치고 힘들 때쯤, 느리지만 편안한 시간이 그리워질 때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우에서 하루를 머물러 봄이 어떨까.

시우루-(37)

 

 

글 고아라(SmartGo5), 사진 고아라, 김유현, 김수현(SmartG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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