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박. = 차에서 간단하게 잠을 잔다.
장.박. = 지정된 장소에서 오래 머문다.
숙.박. = 정해진 숙소에서 잠을 잔다.
요즘 뜨는 키워드 중 하나는 차.박.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연일 다양한 매스컴을 통해 차박에 적합한 모델에 대한 내용이 쏟아져 나오고 캠핑카, 카라반 등 RV를 소개하는 방송이 끊이질 않고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차박이라는 단어와 과연 적합한 모델인지에 대한 단순한 의구심이다.
텐트를 치고 지내는 캠핑도 아니고 캠핑카나 카라반에서 지내는 알빙도 아닌 것이 '차박'이라는 용어에 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에 용어 정리에 대한 애매모호함에서 시작된다. 그렇다고 단순히 차를 세우고 잠을 자는 것에 국한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외부에 텐트를 결합하고 실내의 평탄화를 통해 취침 공간을 확보하고 하는 모습에서 오토 캠핑과의 차별성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취침 공간이 차라면 차박, 텐트 내부라면 캠핑, 캠핑카나 카라반의 침대라면 알빙이라는 정의에 도달하게 되었다.
아무리 넓고 높은 베이스의 자동차라도 성인 2명이 온전하게 누울 공간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다. 1열을 최대한 뒤로 당기고 시트를 젖혀 뒤로 누울 순 있겠지만 사선으로 휘어진 상태에서 잠을 자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몸이 불편한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물론 일부 자동차는 그나마 견딜만은 할 것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불편한 상태로 견디는 것을 차박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차박의 기본 전제 조건은 최소한 평탄화는 '제대로 이루어진 취침 공간을 확보해야' 차박이라 부를 수 있다. 평탄화의 과정은 자동차의 고유한 사이즈와 시트 배열, 시트 디자인 등에 따라 다를 것이다.
차박은 180x50cm(근거 법령 : 자동차 튜닝에 대한 규정. 2018년 기준)의 1인 취침 x 2인의 공간 규정(180x100cm 이상의 연속된 평면)을 갖춘 카라반, 캠핑카와 다르기 때문에 사이즈에 대한 제한은 없다. 하지만 자동차 튜닝 세부 업무규정에서 보았듯 최소한 성인 2명이 누울 공간은 확보되어야 진정한 취침 공간이라 부를 수 있다. 이보다 작다면 차박이라기 보다 차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깨는 것이란 설명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만큼 취침 공간은 여행, 차박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가 되고 있다.
단순하게 시트를 펼치고 잠만 잔다고 해서 차박이라 부르기엔 부족한 것이 많다. 아무리 경치가 좋은 장소에 갔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프고 춥거나 더울 것이며 좀 더 지나면 화장실도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다.
차에서 이 모든 행위를 하지 않고 버틴다면 굳이 이 곳까지 먼 길을 달려와서 이러고 있는 이유가 있을까? 차박은 최신 트렌드이기 이전에 다양한 모습으로 개인의 노하우와 준비된 사람들이 해오던 생활 방식이기도 하다. 차박에 가장 최적화된 사람이라면 트럭 기사분들과 낚시꾼일 것이다. 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과 취침 공간으로 자동차를 이용할 뿐이다.
차박을 아주 자유로운 여행 문화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낭만 여행자들에겐 가혹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최소한의 공간과 주변에 대한 인식이 없는 상태라면 무법, 불법적인 행위가 동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차박의 세부 사항을 살펴본다. 여행을 끝내고 오후 6시에 차박 장소에 도착했다고 가정해보자. 다음 날 오전 6시~8시를 감안해도 12~14시간을 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좁은 자동차 내부에서 창문까지 모두 닫은 채 12시간을 버티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서지도 못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차박을 즐긴다면 금방 한계에 도달할 것이다. 스마트폰도 충전해야 하고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다면 일은 점점 복잡해질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없는 노지, 야외 주차장, 공터, 바닷가 등이라 하더라도 난방 시스템이 없는 상태에서는 한 두 시간 이상 버티기 힘들어진다. 익숙한 사람이라면 동계용 침낭을 꺼내고 보온병에서 따듯한 차 한 잔을 부어 느긋하게 경치를 만끽하겠지만 준비가 덜 된 조급한 당신이라면 차에 시동을 걸고 히터를 돌리며 공회전을 시작할 것이다. 춥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반응일지 몰라도 주변에 누군가가 있다면 진상 중에 진상으로 꼽히거나 벌금이 부과될 수도 있다.
계절을 여름으로 돌려볼까? 나무 아래 그늘을 찾았다곤 하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후덥지근한 공기와 땀으로 고생하고 있을 것이다. 시원한 바람과 모기, 벌레들의 공격을 과감하게 바꿀 용기가 있다면 시도해도 좋지만 최악의 차박으로 기억될 것이다. 당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몇 명 더 있다면 수시로 시동을 걸고 소음과 매연을 선사할 것이다.
성수기를 지난 바닷가의 화장실과 시설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수도도 잠겨있고 문이 굳게 잠긴 화장실이 얼마나 아쉬운지 말이다. 내 차에 이를 대비해 모든 짐과 용품들을 수납했다면 취침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어디론가 치우고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외부로 확장 텐트와 세팅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이 때부터 낭만적인 차박에서 모두의 눈치를 보는 떠돌이가 되는 것이다.
시설이 어느 정도 갖추어진 캠핑장에서 이런 모습의 오토 캠핑이 이루어진다면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폐쇄된 낯선 지역에서 외부에 세팅을 펼치는 순간, 불편러가 된다. 철수 시 모든 것을 치우고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돌아왔다면 차박 고수임이 틀림없다.
최근 차박하는 사람들이 차박지 주변에 버리고 온 쓰레기며 노상 방뇨, 불피운 흔적,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펼쳐놓고 즐기는 행위 자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주변에 있던 캠퍼와 캠핑카, 카라반을 이용해 조용히 즐기던 알비어조차 차박한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부족한 것에 대한 불편함과 준비 부족은 모두가 본인의 잘못이란 점을 인식하기 바란다.
휴대용 변기와 샤워 텐트 하나만 준비해도 언제 어디서든 시원하게 화장실 문제를 처리할 수 있다. 금액으로 따지면 15만 원 내외면 가능한 해결 방법이다. 주차장은 주차를 위한 공간이지 차박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시 주변을 둘러본다거나 낮잠을 즐기다 떠나는 것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잠을 자기 위해 이 곳을 찾은 당신이라면 최소한의 에티켓과 상식을 갖추고 행동하기 바란다.
차박을 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스텔스 모드'는 누가 보아도 주차된 차인 듯 조용히 서 있는 상태에서 즐기는 것이지 '나는 차박하는 사람이요'라고 떠들 듯 세팅하고 즐기는 것은 아직까지 용납되지 않는다. 몇 만 원 지불하고 캠핑장에서 마음껏 즐기길 권해본다. 방파제, 부두, 관광지 주차장, 조용한 공원 등 누군가의 멋진 사진과 SNS로 보았던 풍경은 차박의 현주소가 아닌 사진 상의 연출된 장면일 가능성이 크다. 당신의 현재 모습이 차박하는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똑바로 행동하여 이 곳이 폐쇄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주길 당부한다.
차박은 본인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을 정확히 이해하고 준비된 자동차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 차에서 잠을 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찾는 것이 우선시 되고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차박 여행자가 되도록 준비하길 바란다.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차박, 보여주기 식이 아닌 추억을 만드는 여행의 한 장르가 될 수 있도록 모두의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