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반으로 떠난 2박 3일 가족여행
카라반으로 떠난 2박 3일 가족여행
  • 더카라반
  • 승인 2015.09.0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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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반으로 떠난 2박 3일 가족여행

TRAVEL

 

 

 

 

카라반테일에서 흔쾌히 카라반을 빌려주기로 했단다. 산 하나를 넘은 기분이다. 이제, 남은 숙제는 ‘어디로? ’이다. 카라반이 있을 때도 여름에는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더운 여름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캠핑장에 카라반을 세워 놓고 여름휴가를 보내는 것은 고역이었다. 다른 캠퍼들의 곱지않은 시선도 부담스럽고 북적이는 번잡스러움도 싫다. 그렇다고 여름휴가철에 인적이 드문 노지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시 고민이다.

 

 

 

 

 

 

 

 

 

전에 탔던 스탈렛 390CP와 비슷한 크기이다. 전체적인 외관을 살펴본 첫인상은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몸매를 가진 체조선수와 같은 모습이다. 하얀색 GRP 바디의 단단하고 굵직한 모습은 첫눈에 보기에도 믿음직스럽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본 모습은 영국식카라반의 숨은 매력을 보여준다. 밝은 톤의 실내색상과 함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면에 위치한 ‘L’자형 레이아웃의 소파이다. 대부분 중형급 이상의 카라반들이 ‘ㄷ’ 자형 또는 ‘11’자형 레이아웃의 소파를 가지고 있는데 소형 카라반인 이 녀석은 ‘L’자형 소파를 가지고 있다.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살려 왼쪽과 전면에만 배치된 소파는 편안하고 개방감 있게 다가온다. 좁은 실내공간임에도 ‘L’자형 소파 덕분에 실내공간이 훨씬 여유 있게 느껴진다. 이 소파는 숨겨져 있는 레일형태의 갈빗살 프레임을 꺼내 성인 2명이 편히 쉴 수 있는 침대로 쉽게 변환이 된다. 뒤쪽에 위치한 테이블은 4명이 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른 두 명이 마주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이다. 하지만 전면에 위치한 소파가 있다. 비 오는 날이면 옷장 속에 감추어둔 테이블을 꺼내 4인 가족이 여유롭게 앉아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뒤쪽의 작은 테이블에서는 부부끼리 커피를 즐기거나 아이들이 책을 보거나 놀이 하는 용도로만 활용하고 가족식사는 전면 소파에서 즐기면 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 야외에서 식사를 즐기는 한국의 캠핑문화와 작은 실내공간을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인 것 같다. 성인 1명이 잘 수 있는 침대로 변환되는 뒤쪽 테이블 위에는 벙커베드가 있다. 평소에는 접어놓았다가 저녁에는 내려서 2층 침대를 만들면 된다. 어른이 올라가기에는 조심스러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자기에 적당하다. 3구 가스레인지와 함께 콤비네이션 오븐 덕분에 좀 더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고 소파 밑에 숨겨져있는 Whale사 난방시스템은 일체형 컨트롤 패널에서 실내난방 온도와 온수조절이 가능하다. 화재경보기와 일산화탄소경보기가 기본적으로 설치돼 있고 중형급 카라반에서도 찾기 힘든 알코 ATC가 기본 장착되어 안전에도 충실하다.

 

 

 

 

 

 

 

카라반테일 김장수 팀장으로부터 기본 사용법에 대해 배우고 나서 차에 연결하고 집으로 향했다. 카라반을 견인한 지 오래돼 내심 긴장을 했지만, 이내 익숙해져서 편안하게 운전을 할 수 있었다. 크기가 작은 편

이어서 아파트 주차장에 쉽게 주차를 하고 집으로 올라와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여행준비랄 것이 특별히 없다. 그저 입을 옷가지와 얇은 이불 조금, 그리고 냉장고에서 처분해야 할 음식재료 준비하고 지하주차장

한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카고 트레일러에서 캠핑용품을 꺼내 차에 실었다. 굳이 카라반에 옮겨 싣는 것이 귀찮기도 했지만 익스플로어 304에는 전면 수납공간이 있을 뿐 측면의 서비스도어가 없다. 전면 침대라면 침대 아랫부분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 텐데 ‘L’자형 소파이다 보니 캠핑의자와 테이블 등을 여유 있게 보관하기 어렵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셈이다.

 

여행 첫날, 정선에서 여유를 만나다

길이 막힐까 봐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내가 사는 부천에서 정선까지는 대략 4시간의 거리,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아침 7시 출발계획은 역시나 8시 출발로 변경됐다. 서둘러 다시 견인하고 정선을 향해 고속도로로 향했다. 휴가철 목요일 출발, 어쩔 수 없이 교통체증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영동고속도로 상황은 양호했다. 약간씩의 정체는 있었지만 예상했던 시간을 조금 넘겨 정선에 도착했다. 고릴라캠핑장에 도착해 급하게 카라반을 분리하고 정선에서 첫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고릴라캠핑장이 있는 여량면은 작은 시골인데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아서인지 제법 식당들이 있었다. 차를 타고 적당한 식당을 찾다가 발견한 곳은 옥산장이란 한식당이다. 여관과 함께 운영하는 식당인데 제법 유명한 곳인지 식당 안은 분주하다. 정선하면 먼저 떠오르는 메뉴는 곤드레밥. 곤드레를 물에 불린 후 삶아 밥에 넣어 막된장이나 양념간장을 함께 넣어 비벼 먹는다. 맛이 깔끔하고 구수하다. 곤드레밥을 주문하면 함께 나오는 시원한 된장국도 별미이다. 곤드레향이 살아있어 비로소 강원도에 온 느낌이 든다.

 

 

 

 

 

 

 

식사를 마치고 옥산장을 나선 시간은 오후 2시. 나무그늘이 없는 캠핑장으로 가면 결국 좁은 카라반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어야 한다. 바로 정선을 휴가지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 화암동굴로 향했다. 여량면에서 화암동굴까지는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정선군을 중심으로 반대편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화암동굴에는 이미 많은 피서객이 몰려와 있다. 동굴 매표소 바로 앞 주차장은 이미 만석인 모양이다. 안내원들이 입구에 있는 주차장으로 차를 유도한다. 주차를 마치고 뜨거운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작은 다리를 건너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길이 제법 길다. 하지만 이곳은 화암동굴 입장권 매표소가 아닌 동굴 입구까지 태워다 주는 모노레일 탑승권 매표소이다. 모노레일을 타기 위해서는 약 40분을 기다려야 한다. 아스팔트 열기가 올라오는 매표소 앞에서 40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못내 고역이다. 매표소 앞에서 동굴이 있는 산을 올려다보니 바로 동굴 입구가 보인다. 경사가 가파르긴 하지만 나무그늘 밑으로 한 10분만 걸으면 될 거리이다. 아이들을 이끌고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전에 모노레일을 탔었는데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걸보니 별것 아닌 모양이다. 운동을 잘 안 하는 아이들에게 이번 기회에 땀 좀 흘리게 하고 시원한 동굴로 들어가는 것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한 7분여를 힘들게 올라서 도착한 곳, 내가 동굴 입구라고 생각했던 곳은 바로 동굴 출구이다. 앞으로 경사가 가파른 길로 15여 분을 더 올라가야 한다. 당황스럽다. 하지만 다시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안지기를 끌고 다시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점점 힘에 부친다. 어느새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가고 있다. 밑에서 봤던 나무그늘도 어느새 사라지고 달구어진 아스팔트 길이 계속 이어져 있다. 아무리 10년 전이라도 왜 기억이 나지 않았던 걸까? 마침내 헉헉거리며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뽑아주며 태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에 운동하니까 좋지?” 아이들이 째려보는 것 같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들려야 하는 코스, 화장실이다. 총 길이 1,500m에 달하는 동굴 안에는 당연히 화장실이 없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중간에 곤욕을 치를 수 있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동굴 입구로 드디어 들어선다. 조금 시원한 느낌이 들지만 아직 옷은 땀에 젖어 있다. 평탄하게 쭉 이어지는 동굴의 입구 부분에는 일제강점기, 금광으로 개발된 동굴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그 당시 광부들의 생활을 재현한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루 종일 좁은 막장에서 힘들게 일한 선조들의 모습을 정확히 재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낡아서인지 괴기스럽기만 하다. 아이들은 컸다고 별로 관심이 없다. 우리 부부 역시 그렇다. 그저 왜 이렇게 시원하지 않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내 길은 끊기고 철제계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굴 내부 중간중간, 돌출된 바위에 조명을 비추며 호랑이 바위라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려준다. 울산의 자수정 동굴에서도 그랬지만 그냥 조용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감상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뭔가 그럴싸하게 억지로 만들어 보여주고 시끄러운 소리로 흥미를 끄는 방식의 동굴관광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20여 분을 걷자 드디어 냉장고 속에 들어온 듯 차가운 바람이 땀을 식혀 준다.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하는데 이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차가운 바람에 몸은 식었지만, 동굴에 가득 찬 습기 때문인지 상쾌하지는 않다. 서둘러 가디건과 얇은 자켓을 꺼내 입고 우리 두 부부는 서로 보고 웃는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뜨거운 한여름에 이렇게 추워서 옷을 꺼내 입어야 하는 동굴에서의 휴식이야말로 진정한 피서가 아닐까? 화암동굴의 백미는 마지막에 있다. 도깨비 인형들이 있는 동화의 나라를 거치고 나면 드디어 뻥 뚫린 광장이 나타나 멋진 장관이 펼쳐진다. 석회암 지대에 형성된 화암동굴에는 기기묘묘한 모양의 종유석, 석주, 석순, 석화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시간마다 바뀌는 조명 덕분에 큰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종유석들과 석주들이 녹색으로, 붉은색으로 그 모습을 바꿔가며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이쯤 되면 겉옷을 준비하지 않아 추위에 떨며 발걸음을 재촉하던 사람들도 대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부지런히 사진을 찍게 된다. 광장 한복판에는 작은 못과 함께 이무기 상이 세워져 있다. 관광객들을 위해 부랴부랴 전설이라도 만들어낼 기세이다. 조금 아쉽다.

동굴 밖에 나오니 따뜻한 햇살과 바람이 반갑다. 다시 길을 걸어 주차장으로 향한다. 가까운 곳에 있는 화암약수터에 들르기로 했다. 차로 약10여 분을 달려 약수터에 도착했다. 약수터 가는 길 한편에는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늘 밑에 앉아 피서를 즐기고 있다. 화암약수는 1913년에 문명무라는 사람이 꿈속에 동자바위 아래 청룡과 황룡이 얽혀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고 땅을 파헤치니 붉은 물줄기가 솟아올라 왔다고 한다. 그 물을 마시니 혀가 짜릿하고 시원하며 온몸에 힘이 솟는다 해서 널리 알려졌는데 바로 산화철 탄산수 탓이다. 아이들은 입을 데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내뱉는다. 바위틈에서 올라오는 약수여서인지 발밑에 항아리를 묻어두고 거기에 고인 약수를 떠먹어야 한다. 과히 위생적이지 못하게 느껴져 아쉬웠지만 톡 쏘면서 시큼한 맛의 약수는 시원하기만 하다. 아이들과 함께 신발을 벗고 약수터 바로 옆 얕은 개울에 발을 담그고 앉았다. 어느새 더위는 모두 사라지고 숲이 주는 청량함과 개울물 소리가 편안한 휴식을 준다.

 

오는 길에 정선 시내에 들렸다. 도로 옆에 있는 철물점과 소방서를 보며 갑자기 아이들이 탄성을 지른다. 삼시세끼에서 후더분한 시골총각이 있는 철물점과 이서진이 종종 들려서 힘든 거사를 치르는 소방서를 직접 눈으로 보니 신기한 모양이다. 내일은 정선 오일장이 있는 날이다. 오늘은 사전답사와 함께 저녁식사를 위해서 시장에 들렀다. 시장을 둘러보며 눈요기를 하다가 대박집이란 식당에 들려 다시 곤드레밥과 콧등치기 국수 그리고 모듬전을 먹었다. 허기져서 모든 것이 맛있다. 5,000원짜리 모듬전은 정말 맛이 좋았다. 다른 곳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메밀전을 종류별로 듬뿍 담아 내준다.

 

캠핑장에 돌아왔다. 카라반 자리를 잡고 전원을 연결하고 짐을 꺼내 정리한다. 카라반 안에는 낮에 달구어진 열기가 가득 차 있다. 맥스팬을 가동해 열기를 빼내면서 에어컨을 켜니 금세 시원해진다. 아이들은 카라반에서 나오질 않는다. 어느새 어둠이 깊게 내려와 있다. 텐트 캠핑객 2팀만이 있을 뿐 캠핑장은 조용하다. 참 마음에 든다. 조용한 아우라지강에서 올라오는 새벽 물안개를 바라볼 수 있고 밤에는 건너편 마을에서 새어 나오는 사람들의 불빛이 강물에 번져 묘한 감흥을 준다. 캠핑장 바로 건너편에 아우라지 다리의 조명이 꿈처럼 눈에 들어온다. 캠핑장 바로 옆에는 우뚝 절벽이 솟아 있고 뒷편의 작은 산은 깊은 숲을 자랑하고 있다. 캠핑장 옆으로는 레일바이크 철로가 지난다. 조용한 저녁에 마지막 기차가 희미한 불빛 속에 사람들을 태우고 느릿느릿 철교를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급하게 살아온 삶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한적하고 여유롭기만 하다. 이런 곳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어닝등 아래 테이블과 의자를 꺼내앉아 부부는 시원한 맥주를 꺼내 가볍게 건배를 한다. 밤이슬이 어느새 어깨에 내려앉는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이제 잘 시간이다.

 

여행 둘째 날, 정선에서 삼시세끼를 만나다

둘째날, 아침 8시 30분까지 구절리역에 도착해야 한다. 어젯밤에 정선레일바이크 탑승권을 구입하려면 새벽 6시에는 나가 줄을 서야 한다는 소리에 한숨짓던 나에게 캠핑장 사장님이 조심스럽게 전화번호 하나를 주셨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까지 약 7.2km의 폐철로 구간을 15km/h정도로 달리는 정선 레일바이크의 탑승권은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인터넷으로 70%, 현장에서 30%로 나뉘어 판매된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

약하지 못했다면 동네할머니들에게 약간의 웃돈을 드리면 할머니들이 새벽에 나가 현장판매 탑승권을 구매해서 넘겨주신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약속장소에서 만나 탑승권을 넘겨받았다. 하루에 총 5번 운행되는데 더위를 피해 가장 빠른 8시 30분짜리, 4인승을 선택했다. 따로 번호가 지정된 것이 아니어서 적당한 레일바이크를 골라 앉으면 된다. 몇 가지 주의사항과 함께 브레이크 검사를 한 후 맨 앞에 있는 2인승부터 출발한다. 출발지역이 약간 내리막이어서 인지 별로 힘들이지 않고 레일바이크는 정선의 숨겨진 풍경 속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중간에 사진을 찍어주는 포인트와 간단한 음료수를 파는 간이매점이 있는 곳에서만 약간 막힐 뿐 적당한 속도로 달릴 수 있다. 더워질 만하면 시원한 터널 속으로 들어가 납량열차를 탄 듯 더위를 잊을 수 있다. 30여 분을 달리면 목적지인 아우라지에 도착한다. 아우라지에 내려서 다시 돌아가는 기차 편을 기다려야 한다. 마지막 레일바이크가 도착하고 나면 기차가 레일바이크를 모두 연결한 후 손님을 태우고 다시 구절리역으로 돌아간다. 한참을 무료하게 기다리다가 오는 길에 찍은 사진을 구경하러

갔다가 만 원을 주고 가족사진 앨범을 담아가지고 왔다. 생각보다 사진도 마음에 들었지만 간직할만한 추억거리가 될 것 같아서였다. 돌아가는 열차에 늦게 올라타니 이미 객실 안과 입석 모두 만석이다. 에어컨은 감히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흔한 선풍기 하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붙어서 연신 부채질을 하며 20여 분을 달려 구절리에 도착했다.

 

 

 

오늘은 5일마다 서는 정선 장날이다. 어제 사전답사를 마쳤기에 느긋하게 정선장으로 향했다. 정선 시내 입구에서부터 길이 막힌다. 한참을 느리게 움직여 정선시장 입구의 유료주차장에 주차하고 장에 들어서자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에 치여 이리저리 헤매다가 점심을 먹을 식당을 찾았지만 모든 식당이 줄을 서 있거나 주문이 밀려 있었다. 결국 이리저리 식당을 찾아 헤매다 할머니들이 부치는 메밀전 냄새에

끌려 들어간 곳은 삼겹살 전문 식당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에어컨 탓에 곤드레밥과 콧등치기 국수를 주문했다. 이내 더워도 시장 밖으로 나가 제대로 된 식당을 찾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다시 시장으로 나섰지만 어제 본 모습에 단지 사람들만 많아졌고 가게마다 특색이 없이 대부분 비슷했다. 시장 안에 있는 카페에 앉아 더위를 식히면서 관광가이드를 보다가 큰 녀석이 정선미술관을 발견했다. 바로 이곳이다. 정선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은 제법 멀었다. 가는 길에 경치가 좋아 30여 분을 정신없이 달렸다. 도착한 곳은 폐교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이었다. 미술관안 에서 색소폰으로 구성지게 ‘내 나이가 어때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왠지 불안했다. 넓은 잔디밭을 지나 폐교 안으로 들어서자 왼편에는 미술관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반주기를 켜놓고 색소폰 연주에 빠져 있다. 오른편 교실 한 칸에는 여기저기서 모아온 듯한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옆 교실은 도자기체험교실이다. 갑자기 힘이 빠진다. 정선이란 이름을 쓴 미술관이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 수준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건 너무 실망스럽다. 한숨을 쉬고 나와 큰 나무 그늘아래에 평상에 앉아서 땀을 식혔다. 넓은 잔디밭 주변의 큰 나무 아래마다 있는 평상은 캠핑용 데크로 단체캠핑객이 가끔 이용하는 모양이다. 카라반을 끌고 조심스럽게 내려오면 캠핑하기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학교 옆을 흐르는 작은 천의 물은 발이 시릴 정도였지만 마을을 지나와서인지 천바닥은 물이끼가 잔뜩 끼어 있다. 바닥만 깨끗하다면 아이들 물놀이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실망감을 안고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숨겨진 보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단양 8경이 도로 양옆으로 펼쳐져 있다. 기암괴석과 절벽으로 이루어진 길을 천천히 달리며 구경하는 맛은 기가 막히다. 중간중간에 차를 세워놓고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어느 한 곳 빠뜨리고 그냥 지나가기 아쉬울 정도로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 정선미술관 때문에 실망했던 여행길이 이내 감탄으로 바뀐다.

 

 

 

 

 

 

 

정선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삼시세끼 촬영지, 덕우리 대촌마을이 있다. 촬영이 없을 때 가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카페주인장의 조언에도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 때문에 들르기로 했다. 삼시세끼 촬영 탓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어쩔 수 없이 마을 입구에 주차장을 만들고 차를 통제하고 있다. 주차를 하고 10여 분을 터벅터벅 내려가면 촬영장소가 나온다. 입구에는 촬영팀의 안내문과 함께 출입금지 줄이 늘어져 있다. 촬영이 있는 날이면 멀리서 집 모양도 구경할 수 없단다. 멀리서나마 바라보는 작은 집은 낯이 익어서인지 정겹게만 느껴진다. 대문 앞을 지나면 수수노예들이 한 근의 고기를 얻기 위해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수수밭이 나온다. 지금은 옥수수가 잔뜩 자라고 있다. 마당에는 아무것도 없고 촬영팀 스태프 몇 명만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집을 지키고 있다. 집 뒤편으로 보이는 옥순봉의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다. 하지만 다시 힘들게 오르막길을 10여 분을 오르다 보면 아름답던 마을의 모습보다는 시원한 에어컨이 더 그리워진다. 도로변에 있는 농협마트에 들려 삼겹살을 조금 샀다. 캠핑에 삼겹살이 없다면 무슨 낙이랴? 삼겹살에 쌈을 싸먹으며 두 번째 밤을 보낸다. 오늘은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시원하다.

이래서 모두들 강원도로 휴가를 오는 모양이다. 점점 쌀쌀해진다.

 

 

 

 

 

 

 

 

 

셋째 날, 정선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나다

어느새 휴가 마지막 날이다. 캠핑장에 큰 그늘만 있었더라면, 가까운 곳에 시원한 계곡만 있었으면 하루 정도 더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데 하루정도 더 머물고 싶은데 아쉽다. 아침을 먹고 한반도지형을 볼 수 있다는 스카이워크로 향했다. 정선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어 오르막길을 한참을 달렸다. 주차장 입구에서부터 길이 막힌다. 차량 한 대가 빠져야 주차장에 입장할 수 있다. 조금 기다려 차를 주차하고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었다. 사람들이 제법 길게 늘어서 있다. 다행히 그늘막이 있어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스카이워크는 강화유리로 바닥을 만들어 마치 공중에서 보듯이 한반도 모양의 강을 구경하는 곳이다. 강화유리 구조물이다 보니 입장객 수를 제한해서 구경을 마친 입장객이 나와야 그다음 입장객이 들어갈 수 있다. 20여 분을 기다려 덧신을 신고 스카이워크에 들어갔다. 발밑으로 보이는 아찔한 절벽과 함께 한반도 모양이 보인다. 앞에선 사람들이 좋은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리를 비켜주면 조금씩 앞으로 나간다. 느긋하게 경치를 구경할 틈이 없다. 서둘러 사진을 찍고 양보해 주지 않으면 뒷사람들의 시선이 차가워진다. 결국 등을 떠밀리다시피 사진을 찍은 기억밖에 남지 않는다. 입장료가 비싸던지 내 취향이 아니다. 차를 타고 다시 정선 시내로 가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정선에서 곤드레밥으로 가장 유명한 식당은 싸리골이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싸리골 근처 골목에 있는 정선풍경이란 곳이다. 젊은 부부가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방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자 정선군 홍보대장을 자처하는 젊은 사장님이 친절하게 다가와 이것저것을 알려준다. 진작 들었으면 좋았을 정보들이 많다. 곧이어 맛깔스러운 곤드레밥 정식이 나온다. 곤드레밥에 오리고기를 곁들인 한상차림이다. 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맛집으로 소문난 정선시장 내의 대박집이 억지로 맛을 만들어 냈다면 이 집은 정성으로 맛을 담아냈다. 음식 맛으로는 절대 뒤지지 않는데 골목에 자리하고 있고 사람들의 입소문이 나질 않아서 식당은 한산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젊은 사장님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와서 말을 건넨다. 젊은 사장님께 꼭 다시 찾아오마고 인사를 건네고 캠핑장에 돌아와 철수를 시작했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writer + photographer 박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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