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에서 여행가까지 산악인 김인섭, 가수 리아 부녀
가수에서 여행가까지 산악인 김인섭, 가수 리아 부녀
  • 더카라반
  • 승인 2015.07.1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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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에서 여행가까지 산악인 김인섭, 가수 리아 부녀

INTERVIEW | Special
 

 

 

 

가수에서 여행가까지 산악인 김인섭, 가수 리아 부녀

산악인 아버지와 가수 딸, 특별한 부녀를 만나다

1964년 은벽산악회를 창립, 1972년 프랑스국립스키등산학교(ENSA) 수료, 1974년 한국등산학교 창립, 1975년 에베레스트 1차 정찰대 부대장까지, 국내 유명한 산악인은 다 그의 제자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국내 산악계에 한 획을 그은 원로 산악인 김인섭. 칠순이 넘은 지금도 꾸준히 오지 여행을 다니는 그에게는 아주 특별한 딸이 있다. 바로 가수 리아다. 국내 대표 여성 보컬리스트인 리아는 어릴 적 아버지와 같이 네팔에서 살아서인지, 아니면 아버지를 닮아 타고난 방랑벽 때문인지 배낭여행도 많이 다녔다. 그래서 이제는 아버지가 지나왔던 길을 자신이 다시 지나가기 위해 여행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은 대를 이어나간다.

 

리아 씨는 한동안 TV에서 보이지 않았지만, 공연은 언제나 쭉 하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요즘 근황을 알려줄 수 있나요?

 

리아 _ 작년에 전 국민이 슬퍼했던 사건도 있고 올해는 메르스 사태도 있어서 문화계 특히 공연계에 큰 타격이 있었어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죠. 한동안 공연을 쉬다가 다시 공연준비 중이에요. 요즘은 블루스 기반의 락 밴드를 기획 중이라 곧 앨범도 선보일 겁니다. 노래는 이제 저와 같은 거니까요.(웃음) 그리고 작년부터 오지 전문여행사인 ‘리아앤트래블’을 운영 중이에요

 

오지 전문여행사. 가수와 오지여행 어찌 보면 낯선 조합 같아요. 오지 여행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리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요. 가수는 화려한 직업이라 고급패키지여행만 할 것 같고 좋은 호텔만 찾을 것 같은 그런 생각이요. 굳어진 선입견이라고 생각해요. 오지 여행이 좋았고, 저의 어릴 적 추억이 다 오지에서의 추억밖에는 없거든요. 저는 어릴 때 동생이랑 도마뱀잡고 뱀 가지고 놀고 그랬어요,

 

김인섭 리아가 오지 여행사를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저에게 있죠.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 대신 대자연에 풀어놓고 키웠어요, 그리고 제가 82년도부터 네팔에서 오지 전문여행사를 운영했기 때문에 딸이 또 이렇게 제 일을 이어나가는 거 같아요.

 

리아 그 이유가 크긴 하죠.(웃음) 아버지가 여행사를 하시는데 여행 코스를 만들기 위해서 계속 해외에 있고 바빴어요. 그래서 제가 도와가면서 같이 여행을 다니고 싶어서 이 일을 물려받았죠.

 

네팔에서 여행사를 제일 처음 차렸다는 게 놀라운데요. 어떻게 해서 네팔에서 여행사를 차리게 됐나요?

 

김인섭 1979년, 제가 한국일보 네팔 특파원으로 가게 되면서 온 가족이 네팔 카트만두에서 살게 되었죠. 그때 리아는 다섯 살이었고요. 거기서 몇 년간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롯지를 운영했어요. 그러면서 여행사도 같이 했었죠.

 

 

 

 


특파원 생활로 몇 년간 네팔에서 생활했으면 추억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리아 저희집이 안나푸르나가 보이는 곳에서 롯지를 했어요. 그래서 히말라야 등반 시즌이 되면 한국의 유명한 산악인이란 산악인은 다 만나봤죠. 그분들이 집에 머물면서 훈련을 한다고 굴뚝에 자일을 매달아 저를 업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어요. 저도 자연스럽게 자일을 장난감 삼아 놀았죠. 한국 교민이 살지 않는 카트만두에서 등반 시즌 때만 가족이 아닌 한국인을 만날 수 있었죠.

 

김인섭 하나의 추억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네팔에 대한 추억이 많아요. 그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제 딸이 히말라야 로부제 동봉을 등정한 거죠.

 

 

 

 

 

리아 제가 아버지가 가진 여행가로서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환갑이 되던 2002년에 히말라야에서는 그나마 제일 작은 봉우리인 로부제 동봉(6,119m)을 등정했죠. 기업의 후원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급하게 취소가 되는 바람에 자비100%로 떠났어요. 삶의 타격이긴 했지만, 아버지가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을 제가 걸어봤기 때문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추억이죠. 갔다 와서 돈이 없어서 엄청 고생하긴 했지만요.(웃음)

 

 

 

김인섭 이런 추억들과 제 젊음이 그곳에 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네팔이 지진으로 큰 피해가 있어서 마음이 아파요. 지진이 나기 보름 전에도 네팔에 있었으니까요. 너무나 큰 피해로 힘들어하는 네팔을 돕기 위해 국내 방송사와 함께 ‘지진, 그 후 6개월’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기도 하죠.

 

 

 

 


오지의 삶은 제가 생각하던 여가수의 삶과는 참 다르네요.(웃음) 가수활동을 하게 되면서는 여행과는 멀어졌을 것 같은데 다시 여행을 다니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리아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었어요. 그리곤 잠 한숨 자기 힘들 정도로 바쁜 연예인 생활에 지쳐나갔죠. 그때부터 모든 사람이 절 돈으로 보고 있다고 느꼈어요. 음악이 좋아서 가수를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재주넘는 곰이 되어있었죠. 그리고 회사랑 안 좋은 일로 헤어졌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 그 안 좋은 모든 일의 원인이 돈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하지 않은 것을 대중들이 오해하고 그러는 것이 너무 무서워 은둔 생활을 했죠. 그 때 아버지가 어릴 적같이 여행을 떠나자고 말했어요. 결국 3개월간의 설득 끝에 여행을 떠나게 됐죠.

 

김인섭 딸에게 제일 필요한 게 새로움이었던 것 같았어요. 자기의 정착지에 머물러, 아니 숨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미지의 새로운 것을 만나기 가장 쉬운 여행을 떠나자고 했죠.

 

리아 너는 반드시 치유된다고 아버지가 그랬었는데 진짜 갔다 오니깐 기분이 좋아졌어요. 다시 웃기 시작했고, 송곳같이 날카롭던 제가 부드러워졌죠. 그리곤 아버지의 여행을 쫓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여행사를 물려받게 된 가장 큰 이유 같네요.

 

리아 그렇죠. 아버지의 여행사가 아닌 여행을 물려받고 싶었어요. 아버지의 오랜 경험과 여행 노하우를 이어받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제가 치유 받았던 여행을 사람들에도 알려주고 싶었죠. 큰돈을 벌려고 여행사를 물려받은 건 아닙니다

 

 

 

 

 

 

 

여행사 ‘리아앤트래블’은 어떻게 발전할 생각인가요?

 

리아 홍보를 크게 하진 않아요. 홍보에 열을 올리다 보면 돈만을 추구하고 우리가 원하는 여행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는 여행코스를 짤 때 그 나라의 역사서부터 자료, 잘 알려지지 않은 루트를 찾다 보니 준비 기간도 길고 많은 여행객을 감당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해요. 그러다 보니 홍보는 아직 할 생각이 없어요. 어떻게 하면 좋은 여행 루트가 나올까 생각만 하고 있죠.

 

김인섭 쇼핑만 몇 군데씩 다니고 정해진 음식점만 다니는 그런 패키지는 절대로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에 맞는 여행을 해야죠. 오지에 갔으면 오지의 음식을 먹고 오지의 생활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지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공정여행.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여행이죠.

 

 

 

 

 

즐거운 인터뷰였어요. 마지막으로 질문하나만 더하고 싶은데 각자에게 오지 여행은 무엇인가요?

 

 

 

김인섭 파리나 뉴욕, 동경 등 많은 도시를 다녀봤지만,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어요. 하지만 오지는 다르죠. 편하고 한없이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으니까요. 오지 여행은 시원함 그 자체네요.

 

리아 오지 여행은 유체이탈 같아요. 자연 속에서 자신을 가장 객관적이며 직접적으로 돌아볼 기회니까요.

  editor 최웅영 + photograph STORM COMMUN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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