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속의 섬, 추자도
섬 속의 섬, 추자도
  • 매거진 더카라반
  • 승인 2019.11.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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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자항의 전경

가을바람 살랑거리는 아침.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후풍도’에 도착했다. 섬에서 부는 상큼한 바람을 맞으며 하추자를 향하여 꼬닥꼬닥 걷는다. 바람도 머물다 가고, 고깃배, 어부들 그리고 물새들도 쉬어 가는 섬 후풍도에는 어떤 금은보화가 여행자를 맞이할지 기대가 된다.

나발론 절벽으로 향하는 나발론길

42(사이) 좋은 추자도

총 42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추자도는 예전에는 ‘후풍도’라 불렸다. 탐라국으로 가기 위해 지나는 배가 바람을 만나면 잠시 머물다 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추자’라는 지금의 지명 유래는 여러 설이 있지만, 추자나무(楸)가 무성하여 추자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제주도와 한반도 중간에 있는 섬으로 상추자, 하추자, 추포도, 횡간도 4개 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고, 나머지 38개 섬은 무인도로 낚시꾼이나 뱃사공들이 들락거리는 섬으로 이뤄져 있다.

제주에 올레길이 생기면서 추자섬에도 올레길을 만들었다. 18-1코스라 불리는 추자도 올레길을 상추자항에서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나바론 절벽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나바론 요새’ 영화의 절벽 같다고 하여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올레길을 만들기 전에는 나무 데크 없이 오르고 내리는 데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아찔했던 곳이다. 바다를 내려 보기조차 겁이 났던 곳이었는데, 올레길이 만들어지고 나서 요즘 추자도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인기다.

갈매기 우는 소리, 물새들 마중 나와 나를 반긴다. 발길을 재촉하여 상,하추자를 연결하는 추자교를 건넜다. 뒤로는 영흥리 앞으로는 묵리, 다리건너 왼쪽으로 가면 예초리다. 큰 산을 뒤에 두고 삼거리에서 머뭇거리며 방향설정을 하다 묵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들고들 동산을 내려오면서 ‘처녀당’이 있는 석두머리 언덕에 올랐다. 제주 해녀들은 과거에 물질하러 추자도에 갈 때 아기를 볼 ‘애기업게’를 데리고 갔다. 그러다 언젠가 아기 보던 처녀가 실족사로 바다에 빠져 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그 혼을 모시는 신당이 처녀당이다. 처녀당신을 잘 모셔야 묵리 선주나 해녀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 믿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삼거리 버스정류장에서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우물이 보인다. 우두커니 우물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지나가던 마을 어르신께서 자랑 삼아 이야기하고 가신다.

”상, 하추자 다 해서 묵리가 우물이 가장 많아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좋았지.“

추자도의 뷰포인트 나발론절벽으로 가는 길
추자 등대로 가는 길목에서
추자 중학교 전경

추자 한 바퀴, 행복 한 바퀴

길은 묵리를 떠나 신양리로 이어진다. 신양은 추자도에서 아침 햇살이 가장 먼저 드는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추자초등학교 신양분교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왁자지껄해야 할 학교가 조용하다. 운동장을 서성거리다가 골목길로 나와 하추자항으로 들어섰다. 너른 주차장에 자동차는 없고 미역을 널고 있는 아주머니만 부지런히 일손을 노리고 있다. 

하추자항 옆에는 ‘모진이몽돌해변’이 있다. 바닷물에 씻기고 또 씻겨서 몽글몽글한 자갈돌. 바닷물이 밀려오면 쓸려서 올라 왔다가 물이 내려가며 자글자글 소리를 낸다. 오스트리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라도 이 소리를 흉내 낼 수 있을까. 설명하기 어려운 자갈 굴러가는 소리에 귀가 즐겁고, 물새들 소리에 지쳐가는 몸에 엔도르핀이 솟아나는 것 같다. 자글락 자글락 내가 자갈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 젊은이들이 정자에 텐트를 쳤다고 순찰 도는 어른에게 혼나고 있는 소리까지도 마냥 아름답게만 들려온다.

사스레피 나무가 우거진 기정 길을 따라 걷는다. 아무 생각도 없이 걸을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해도 중천을 넘어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한 오후 3시 30분. 예초리 마을 안에 도착했다. 정자 곁에 예초리 마을 안내판을 카메라에 담고 읽어보면서 앞에 펼쳐진 길을 보니 이미 소진되어 가는 체력이 바닥을 치는 기분이다.

억발장군이 있는 엄바위 앞에서 억발장군에 얽힌 한 편의 드라마를 보고서 내리막을 천천히 걸었다. 삼거리 버스정류장 1시간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타고 상추자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추자교 아래는 아침에 보이지 않던 낚시꾼들이 제법 모여 세월을 낚고 있다. 추자도는 어족자원이 풍부하여 낚시꾼들에게는 꿈의 낚시터로도 불린다.

추자교를 지나서 오는 길에 보자고 하고 지나갔던 소공원으로 들어서서 일제에 항거한 추자도 해녀들 항일기념탑 앞에 섰다. 정중하게 고개 숙이고 묵념을 한 후 오석에 메모된 기록을 살펴보고서 상추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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