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고, 또 넘어 줄넘기 하나로 우뚝 선 김수열원장을 만나다
넘고, 또 넘어 줄넘기 하나로 우뚝 선 김수열원장을 만나다
  • 더카라반
  • 승인 2014.09.03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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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고, 또 넘어 줄넘기 하나로 우뚝 선 김수열원장을 만나다

Special Interview
 

 

 

 

 

 


넘고, 또 넘어 줄넘기 하나로 우뚝 선 김수열원장을 만나다

꿈이 생기다

 

 

 

전라남도 고흥, 가난이 무언지도 몰랐던 가난한 시절 줄넘기를 놀이삼아 부단히 넘었다. 돈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못했을 때도 친구들과 거리감이 들었을 때도, 넘고 또 넘었다.

긍정적인 청년이었던 수열은 포기를 몰랐고, 늘 남들보다 부지런히 움직였다. 경기도로 이사와 중학교를 다니며 용돈 벌이 삼아 돌렸던 신문배달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일본 줄넘기 선수의 기네스 기록은 지금의 김수열을 있게 만든 한 단면이 되었다.

“‘멋지다. 나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정말 하루도 빼 놓지 않고 줄넘기 연습을 했어요. 언젠가 그 기록을 넘어보고 싶었죠.”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동네에 체육관이 새로 생겼고, 제일 처음 등록해 복싱을 배웠다. 신문을 더 열심히 돌려야 했지만 복싱은 줄넘기를 넘을 때만큼이나 즐거웠다.

“복싱을 시작하면서 줄넘기를 더 열심히,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줄넘기를 했고, 복싱도 열심히 했죠.”

한번 빠지면 파고드는 성격은 그의 단점이자 장점, 더 나아가 강점이다. 열심히 하는 만큼 실력이 늘었고, 그는 단국대 체육학과에 들어갔다. 입학 전 불의의 사고로 더 이상 복싱 선수를 꿈꿀 순 없었지만 줄넘기는 할 수 있었고, 그는 늘 그렇듯 줄넘기를 넘었다.

 

 

 

 

 

 

 

 

 

 

 


넘고 또 넘어 나를 넘어서다

 

대학 졸업 후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사업도 해보고, 사기도 당해봤다. 수완이 좋았던 걸까, 잘나가는 영업사원이 된 그는 불현 듯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돈을 좇아 꿈을 포기하는 삶은 즐겁지 않았다. 그 생각이 들자 어릴 적 꿈이었던 줄넘기 선수가 떠올랐다. 쇠뿔도 당김에 빼랬다. 그해 11월 일본 줄넘기 선수권대회에 개인자격으로 참가, 3중 뛰기에서 우승, 95, 96, 97년 3연속 세계적인 줄넘기 시장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경험하고, 시범도 보이며 자신을 성장시켰다.

“그때 스즈키 줄넘기가 눈에 들어왔어요. 거기서 힌트를 얻어 내 이름을 건 줄넘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돈을 좇을 땐 보이지 않던 길이 꿈을 좇기 시작하자 선명하게 보였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쉼 없이 줄을 넘었죠.”

줄넘기로 먹고 살겠다고 결정한 후 주변 시선은 불 보듯 뻔했다. 제일 가슴이 아팠던 것은 부모님을 걱정시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확신이 있었고, 잘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96년, ‘줄넘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그는 자신의 꿈을 밀어붙였다.

그런 자신을 응원해주는 평생 단짝을 만난 것도 그쯤이었다. 아내는 지금도 그의 큰 힘이자 원동력이다.

선생님들에게 줄넘기 강연을 하고, 줄넘기 전파를 위해 노력했다. 이론적 정립과 연수에 대한 개념, 줄넘기를 제대로 배워야하는 이유 등 정립해야할 것이 많았다.

“가끔 줄넘기가 힘들다, 지루하다, 어렵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것은 줄넘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줄넘기를 잘하고, 재밌게 하기 위해서는 줄넘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죠.”

 


줄넘기는 나의 인생

 

미국으로 유학을 간 아이들 때문에 일 년에 서너 번은 태평양을 건너는 그는 외로워도 슬퍼도 줄넘기를 넘는다. 그렇게 줄넘기는 그의 삶에 버팀목이 되어 준다.

“막상 미국에 가면 여기저기 다니며 추억도 쌓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것이 많지만 체류기간이 길어야 일주일 정도니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이 한국에 왔을 때 카라반을 체험해 본 적이 있는데 매우 좋아하더라고요. 직접 운행해보지 못해 걱정도 되지만 준비를 해서 유럽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카라반으로 투어도 할 수 있다죠?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네요.”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그의 일상은 줄넘기와 함께이다. 바쁜 일상이지만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위해 부단히 움직인다. 올 초 발행한 자서전은 10년 줄넘기 인생의 정리이자 앞으로 10년을 위한 원동력이 되었다.

“앞으로 줄넘기가 아닌 또 다른 방향에서 청소년들, 도움이 필요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물론 제 평생에 줄넘기를 빼놓을 순 없겠죠. 줄넘기는 제 인생이자, 삶입니다.”

굴곡 없는 삶은 없다. 하지만 살면서 만나는 언덕을 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쉬 넘을 수도, 힘겹게 넘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김수열은 포기하지 않았다. 시련이 오면 뛰어 넘었고, 또 다시 일어났다. 그의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삶의 자세는 줄넘기하면 ‘김수열’이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앞으로 내 달릴 그의 10년을 응원한다.

 


editor 박지영 + photograph ST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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