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정 정인수의 세계 일주 낡은 마을버스를 타고 떠난 페루 여행
사오정 정인수의 세계 일주 낡은 마을버스를 타고 떠난 페루 여행
  • 더카라반
  • 승인 2016.09.0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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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정 정인수의 세계 일주 낡은 마을버스를 타고 떠난 페루 여행

TOUR / SPECIAL  
 

 


 

  사오정 정인수의 세계 일주 낡은 마을버스를 타고 떠난 페루 여행  

폐차 직전의 낡은 마을버스를 타고 세계 일주를 떠난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상상하지도 못했다. 사십 대 중반이 되던 해에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고 사오정(45세 정년) 신세가 되었다. 인생의 후반기는 꿈꾸던 여행 작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

하지만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법. 일 년 후 나는 마을버스 세계 일주 팀에 합류했고, 남미 페루에서부터 고난의 여행을 시작했다.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세계 일주는 그렇게 뜻하지 않게 시작되었다.

 

 

 

세계 일주용 마을버스는 어떤 모습?

종로 12번 마을버스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46만km를 달려서 폐차 직전인 상황이었다. 침대, 조리시설, 샤워실/화장실 같은 편의 시설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실내는 앞쪽 6개의 좌석만을 남기고 나머지 뒤쪽 좌석을 모두 떼어내고 평상을 만들었다. 평상 아래쪽은 수납공간으로 해서 많은 짐을 보관할 수 있다. 본격적인 캠핑카나 카라반에 비하면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평상은 뜻밖에 좁은 공간을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었다. 작은 테이블을 놓으면 식당, 침낭을 깔면 잠자리가 된다.

 

 

 

 

 

 



 

세계지도와 태극기를 부착한 것을 빼면 외형은 마을버스로 운행하던 모습 그대로이다. 버스 위의 캐리어는 타이어와 짐을 보관할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실제로 여행을 해보니 연비만 떨어뜨릴 뿐 필요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에 도착하면서 떼어버렸다.

이렇게 단순하게 개조한 낡은 마을버스를 타고 남미-중미-북미를 지나서 아메리카 대륙을 달리고, 유럽-북아프리카-아시아를 거쳐서 유라시아 대륙을 넘어서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2년 동안 5개 대륙 6만여 km를 여행한 것이다.

 

사람과 버스가 고산병을 앓으면서 안데스를 넘다.

페루의 리마에서 화물선에 실려 온 마을버스를 찾으면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첫 목적지인 공중도시 마추픽추를 향해서 남미 대륙을 관통하는 판아메리카나 도로를 달렸다. 들뜬 기분으로 시작된 여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난의 행군으로 바뀌었다. 높이가 4천 미터가 넘는 안데스 산맥을 만나서 사람과 버스가 모두 고산병에 시달렸다.

 

 

 

 

 

 


 

안데스 산맥의 희박한 산소는 사람과 마을버스 모두에게 치명적이었다. 버스는 흰 연기를 뿜어내고 속도를 내지 못했다. 버스가 힘겹게 고지에 오르는 동안에 사람들도 고산병을 앓았다. 운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버스 뒤쪽에 누워서 절반은 혼절한 상태로 안데스를 넘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 동안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해서 마추픽추로 향하는 관문인 쿠스코에 도착했다.

 

 

 

 

 

 



 

잉카 제국의 배꼽, 쿠스코

안데스를 넘어서 쿠스코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이었다. 언덕에서 바라본 도시는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 잉카인들이 ‘세계의 배꼽’이라 부르던 곳이다. 도시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아쉽지만 어디서도 화려했던 옛 문명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잉카의 신전이 있던 자리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상징하는 성당들만 우뚝 서 있었다.

 

 

 

 

 

 


 

숨겨진 공중도시 마추픽추

마추픽추로 가는 일반적인 방법은 옛 잉카인들이 걸었던 길(잉카트레일)을 3박 4일 동안 걷거나 비싼 요금을 치르고 기차(페루레일)를 타는 것이다. 우리는 비용과 일정을 아끼기 위해서 조금 다른 길을 선택했다. 쿠스코에서 오얀타이 탐보 기차역까지는 작은 승합차를 타고 이동했다. 역에서 마추픽추의 관문인 아구아 칼리엔테까지 30km 정도의 거리는 기차를 타지 않고 걸었다.

 

 

 

 

 

 



 

마추픽추에 오르는 아침. 완벽한 날씨를 기대했건만 하늘은 잔뜩 흐렸다. 마추픽추가 내려 보이는 언덕에 올랐지만, 안개만 자욱했다. 혹시나 마추픽추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을 낼 무렵. 흰 안개 사이로 도시의 모습이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안개가 썰물처럼 흘러내리면서 신비한 공중도시 마추픽추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남미의 열정, 푸노 카니발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 그리고 칠레를 돌아본 후에 다시 페루로 돌아왔다. 남미를 여행하는 몇 달 동안 마을버스는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다. 버스가 워낙 낡은 탓도 있지만 형편 없는 디젤 연료의 품질이 골칫거리였다. 버스는 다시 멈춰섰고, 페루의 하얀도시 아레키파에서 뜻하지 않게 오래 머물었다.

아레키파에서 지내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푸노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푸노까지는 버스를 타고 6시간이 넘게 가야하는 먼 거리였지만, 남미의 축제를 직접 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칸델라리아 성모 축제 Festivity of Virgen de la Candelaria가 열리는 푸노는 골목마다 춤과 음악 열정으로 가득했다. 축제의 열기를 식히려는지 갑자기 하늘에서 우박과 비가 쏟아졌다. 골목마다 빗물이 넘쳐 흘러서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퍼붓는 비 속에서 관객들도 함께 춤을 추며 순간을 즐겼다. 나 또한 비 속에서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몸을 흔들었다.

축제 다음 날. 심한 감기에 걸리고 카메라도 고장이 나서 작동하지 않았다. 비록 몸과 장비는 엉망이었지만 남미 축제의 열정 속에서 보낸 하룻밤 추억은 모든 것을 보상하고 남았다.

  writer + photographer 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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