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놀 때마다 한 뼘씩 자라는 아이들
함께 놀 때마다 한 뼘씩 자라는 아이들
  • 더카라반
  • 승인 2016.01.13 14: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함께 놀 때마다 한 뼘씩 자라는 아이들

COLUMN
 

 

 

 

함께 놀 때마다 한 뼘씩 자라는 아이들

 

“캠핑 가면 뭐해요?”, “캠핑 가면 좋아요?”

캠핑을 시작하고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캠핑 초기에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저 해맑게 웃으며 “밥 해 먹고 놀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야외에서 코펠에 하얀 쌀밥을 지어 연기 폴폴 풍기며 고기를 구워 먹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겁다고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캠핑 가서 뭘 해 먹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캠핑 가서도 삼시 세끼 푸짐하게 차려 먹느라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에 회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캠핑 가서 고기만 구워 먹다 올 건가?’

물론 밖에 나와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엄마 아빠가 밥 해먹기에 열중하는 동안 아이들은 캠핑장 어딘가에 방치 아닌 방치가 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간단하게 식사 준비를 하고 녀석들이 노는 곳으로 가보니 놀이 현장(?)에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녀석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물가에서 놀며 잡아뒀던 물고기들은 플라스틱 생수통 속 물의 수온이 올라가며 집단 폐사(?)해 있었고, 녀석들이 여기저기서 주워와 가지고 놀았던 종이컵, 플라스틱 커피잔, 일회용 숟가락 등은 물가에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자연 속에서 잘 노는 게 아니라 저지레를 하고 있었던 것. 순간 나는 ‘아이들이 잘 놀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정작 정말 잘 노는 법은 모르는구나’, ‘이렇게 뒀다간 자연도 남아나질 않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후 나는 아이들과 캠핑장에서 ‘즐겁게’, ‘잘’ 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꼬마 캠퍼들답게 자연과 공존하는 놀이를 했으면 좋겠고, 재활용 쓰레기가 많이 배출되는 캠핑장의 특성상 그것들을 재활용한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버려지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놀이를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엄마표 캠핑놀이다. 엄마표 캠핑놀이를 시작한 이후 우리 가족의 캠핑 라이프에는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캠핑 가서 뭘 해 먹을까?’ 대신 ‘이번 캠핑에는 무엇을 하고 놀까?’를 고민했고 아이들도 스스로 놀잇감을 챙기며 캠핑에 대한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놀이를 창작해 엄마에게 역제안을 해오기도 했다.

밥을 할 때나 비 오는 날 등 아이들이 테이블에 앉아있어야 할 때는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대신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주어 주제를 정한 뒤 그림그리기 미션을 주었고, 그림을 완성하면 데이지 체인이나 나뭇가지에 걸어 우리들만의 ‘숲 속 전시회’를 열었다. 아이들은 캠핑장의 이웃들이 지나가며 자신들의 그림을 관람할 때마다 정말 화가가 된 듯 뿌듯해 했고 차츰 스마트폰을 보는 것보다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여는 게 더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갔다. 즐겁게 물고기를 잡은 뒤에는 물속 환경과 똑같이 어항을 꾸미는 법에 대해 알려주고 물고기 관찰이 끝나면 조심스럽게 물에 물고기를 다시 놓아주었다. 아이들에게는 물속의 돌과 모래, 수초로 어항을 물속 환경과 똑같이 꾸미는 그 자체가 놀이가 됐다. 요즘 같이 추운 계절에는 우유갑으로 새모이통을 만들어 나뭇가지에 걸거나 그릇에 마른 꽃잎이나 나뭇잎, 피규어 장난감 등을 담고 물을 부어 바깥에서 얼려보는 놀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즐거워했다. 꼭 무언가 특별한 놀이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캠핑의자에 편히 앉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내일의 날씨를 추측해보거나 별자리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겐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다.

캠핑장에서는 놀려고 하면 얼마든지 즐겁게 놀 수 있다. 다만 그 놀이들이 ‘번뜩’ 생각나지 않을 뿐. 캠핑장에서 아이들과 놀고 싶은데 마땅한 놀이가 생각나지 않을 때는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숨바꼭질, 다방구, 사방치기, ‘꼬마야, 꼬마야’와 같은 고무줄놀이, 전기게임, 수건돌리기… ‘과연 요즘 애들이 옛날 놀이를 즐거워하겠어?’라는 생각에 도전조차 해보지 않는 부모들도 있는데 이런 편견부터 버리는 게 ‘엄마표’ 또는 ‘아빠표’ 캠핑놀이의 시작이다. 실제로 일곱 살, 여덟 살인 두 아이에게 어린 시절 즐겨했던 사방치기를 가르쳐주었는데 당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엄마가 한 것이라고는 사방치기판을 그려주고, 놀이방법을 설명해준 것뿐. 사방치기의 신세계를 알고 난 아이들은 이후에 아무런 장난감이 없더라도 나뭇가지를 주워 땅바닥에 사방치기판을 그리고 돌멩이를 주워 또래 친구들에게 사방치기를 알려주며 함께 어울려 놀았다. 어렸을 적 땡볕 내리쬐는 학교 운동장에서 해봤던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는 놀이(일명 발화점 찾기 놀이)도 마찬가지다. 돋보기로 태양열을 모아 종이를 태우면 아이들은 마치 엄마가 마법이라도 부린 듯 “신기하다”며 호들갑을 떤다. 육아를 하며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라’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듣지만 정작 그 눈높이가 어느 수준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 믿자. 엄마 아빠가 내 아이만 했을 때 즐겁게 했던 놀이는 내 아이에게도 즐거울 확률이 크다.

또 하나, 엄마표 캠핑놀이를 하기 전에 몇 가지 준비물을 챙기면 놀이가 더욱 즐거워진다. 그때그때 아이와 함께 해보고 싶은 놀이를 정하고 그것과 연관된 준비물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놀이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물을 챙기지 못했다 하더라도 걱정할 것 없다. 캠핑장에 가면 주변이 온통 놀잇감 천지니까.

민들레 홀씨를 하나 따서 홀씨 날리기를 하는 것부터 애기똥풀을 꺾어 손톱에 물들이는 놀이, 낙엽을 주워 왕관을 만들어 쓰는 놀이, 열매가 많이 열리는 가을에는 열매채집 놀이, 커다란 잎을 마음대로 잘라 조각퍼즐 맞추는 놀이 등 자연물 하나로 할 수 있는 간단한 놀이는 준비물이 따로 필요 없다. 여기에 무언가 재미있는 놀잇감을 만들고 싶을 땐 재활용수거함을 눈여겨보자. 나는 그곳을 ‘보물창고’ 내지는 ‘화수분’이라고 귀띔해주고 싶다.

버려져있던 플라스틱 달걀판 하나는 캠핑장에서 아이들이 자연물을 모아오면 분류놀이를 할 수 있는 분류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꽃이 많이 핀 계절에는 주워온 꽃잎들을 색깔별로 담을 수도 있고, 다양한 열매를 수집해 분류할 수 있는 열매 분류판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물감놀이를 할 때는 이 플라스틱 달걀판이 색깔별로 물감을 담을 수 있는 팔레트로 변신하기도 한다. 스케치북을 가져오지 않았거나 아이들이 낙서를 하고 싶어 할 땐 종이박스가 멋진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될 수 있다. 공놀이를 하고 싶은데 공이 없을 땐 쿠킹호일 안에 신문지나 비닐봉지를 넣고 돌돌 뭉쳐 공을 만들어 캐치볼 놀이를 할 수 있다. 한 여름에는 검은색 비닐봉지에 물을 넣고 비닐 아랫부분에 구멍을 뚫어주기만 해도 시원한 물을 뿜어내는 조리개로 변신해 꽃에 물주기 놀이도 해볼 수 있다. 캠핑장 주변에 조약돌이 많다면 공기놀이를 하거나 조약돌 위에 숫자를 적어 덧셈뺄셈 놀이를 해보는 ‘조약돌숫자놀이’도 재미있다. 특히 조약돌숫자놀이처럼 자연물을 활용해 만든 놀잇감은 조그만 파우치에 넣어 잘 보관하면 ‘엄마표 자연물 교구’가 되기도 한다.

잘 놀고 싶고,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캠핑 짐을 챙긴다. 하지만 정작 캠핑장에 가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노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엄마 아빠가 캠핑장에서 SNS를 통해 다른 이들의 일상에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에도, 엄마 아빠가 캠핑장에서 “건배”를 외치며 얼큰하게 취하는 동안에도 곁에 있는 내 아이들은 자란다는 것. 겨울부터 봄 사이의 계절은, 다시 캠핑 짐들을 정리하며 캠핑을 시작했던 초심을 생각해보기 좋은 시기다.

 


Columnist + 박근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